작성자 : 천수한의원
2024-10-18
1.
20여년 전에 한의원을 개원하면서부터 저는 수면장애, 공황장애, 우울증, 간질, 조현병(정신분열증) 등 신경정신 증상 환자 진료가 많았습니다.
발목이 삐끗하거나 허리통증으로 한의원에 내원하셔서 우울증이나 불면증 이야기를 하시는 분은 거의 없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처음 개원한 그때는 더욱 오랜 시간 맥을 잡았고(정말로 30분간 환자와 진맥 이야기만 한적도 많았습니다), 환자의 맥박의 변화를 유심히 살펴보면서 한의사가 이것저것 묻기 시작하면 조금씩 속 이야기를 하시게 됩니다.
오랫동안 고요하게 진맥을 하며 심장 박동이 불규칙하거나 미세하게나마 급하게 뛰는 상황을 확인하게 되면 반드시 정신적인 스트레스나 충격 등에 대해 물어보는 습관이 생기게 되면서 자연스레 환자의 신경정신적인 문제들에 대해 진료하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개원하고서 1~2년이 지나자 신경정신 증상을 잘 보는 한의원으로 알려지게 되어, 잠을 못 자거나, 우울증과 불안장애, 치매환자, 소아 간질, 또는 공황장애, 심하게는 조현병(정신분열증) 환자까지 진료를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드리는 환자 역시 개원한 후 1~2년 정도 지났을 때 어느 분의 소개를 통해 내원하신 분입니다.
어머니와 함께 내원한 스무살 대학에 갓 입학한 남자 환자였는데, 진료실에 들어와서도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눈을 마주치지 않아 한눈에 보기에도 불안, 우울, 초조, 불면 등 증상으로 내원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2.
엄마와 함께 내원한 남자 환자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고등학교 1학년 후배 아이들에게 집단 구타를 겪은 후 환청과 환각을 경험하며 신경정신과에서 진단 받은 후 약물 치료 중이었습니다.
조현병 치료 약물을 복용하면 집중력이 심하게 떨어지고 피로감이 심해져서 공부를 할 수 없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공부하여 지방 사립대에 합격했는데, 휴학계를 내고 집에서 쉬고 있던 중에 군입대 영장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니던 신경정신과 원장님과 상의를 하니, 병무청에 진단서를 제출하면 군면제가 될 거라는 이야기를 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생각으로는 조현병으로 군면제를 받게 되면 정부의 공식 기록에 남아 이후 직장 취업이나 임용 시험 등 사회생활을 하는데 큰 문제가 될 것 같아 군면제를 받기 전에 한의원 치료를 해 보고자 내원하시게 된 것입니다.
3.
환자의 안위와 관련한 법적인 책임 문제라는 점에 대해 명확히 알지 못했던 개원 초에는,,,
한의원에서 조현병을 진료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했는지를 몰랐지만, 한의학적으로는 소위 “미쳤다”라는 전광증 환자는 – 시대별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 생각보다 많은 빈도로 발생하는 일반적인 질병이기 때문에 치료가 불가능한 질환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환자처럼, 갑작스런 치욕으로 정신이상이 발생한 사람이 역사상 얼마나 많았나요?
총명하던 연산군이 폭군이 된 것은 단 한순간, 자신의 어머니가 겪은 치욕스런 과거를 알고 난 순간이었습니다.
일반적인 사람들도 정도 차이는 있지만 늘 정신적인 충격을 겪고, 어렵게 이겨내고는 합니다.
간혹 정신적인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삶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멈추어버린 경우도 꽤 많습니다. 알콜 중독이나 약물 중독도 그렇습니다. 단지 미치지 않았을 뿐이죠.
4.
‘조현병으로 인한 군면제’
조현병 환자에 대한 사회적인 낙인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며, 어머니께서도 자신의 아들에게 가해질 낙인을 두려워하셨던 것입니다.
자신의 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고, 밥도 자기 방에서 먹고, 화장실만 겨우 다니는 상황이었고, 밤에도 잠을 거의 못 자면서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는 아들은 엄마와도 의사소통의 관계가 끊어지려는 참이었습니다.
정말 큰 용기를 내어 한의원에 같이 따라와 준 환자와 어머니를 위해 최선을 다해 치료를 하겠노라고 다짐을 했지만, 조현병은 불면증이나 우울증, 공황장애와는 차원이 다른 질병이었고, 양방 진단명에 대한 무게감이 새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한번 치료를 하기로 마음을 먹고 치료 방법을 생각했는데, 이 환자의 경우는 후배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며 참기힘든 치욕을 겪은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한의학에서는 ‘경계(驚悸)로 인한 전광(癲狂)’이라고 하는데, 쉽게 말씀드리면 ‘정신적인 충격을 받고 놀래서 미쳤다’ 라는 뜻입니다.
불면증과 울화병, 우울증, 공황장애 등 다른 수많은 정신 질환 역시 정신적 충격이 주된 원인이 되므로, 조현병이라는 무거운 질병명에서 벗어나 다른 신경 정신질환을 대하는 것처럼 치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5.
정신적 충격으로 사람을 피하고 바깥세계와 단절된 20세의 남자 환자는 한의원에 2~3번 내원하고는 한동안 진료를 받으러 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어머니만 진료실에 오셔서 아이의 상태를 상담하고 한약 처방을 받아 가셨습니다.
처음에는 한약도 먹지 않을 것처럼 이야기해서 치료가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다행히도 어머니의 지극정성으로 한약을 꼬박꼬박 잘 복용하였습니다.
한달 반 정도 지나면서 밥을 식탁에서 먹게 되었고, 석달이 지나면서는 슈퍼마켓에 음료수를 사러 밖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반년이 지나면서는 서울로 콘서트를 보러 갈 정도로 좋아져서 2학기 때는 복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몇 년이 지나 한의원을 인사를 와서 그동안의 이야기를 하는데, 대학 1학년을 마치고 편입시험을 준비하여 같은 대학의 보다 상위권 학과로 편입하였고, 공군으로 군대에 입대하여 병장으로 제대했고, 제대 후에 다시 편입 시험을 봐서 국립대학교에 합격하여 졸업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공무원시험을 봐서 구청에서 근무하게 되었다고 좋은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